불멸의 공예가 피어나는 청주 공예의 도시|박효성

불멸의 공예가 피어나는 청주 공예의 도시|박효성

불멸의 공예가 피어나는 청주 공예의 도시|박효성

공예를 빚는 도시

공예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 AI를 비롯한 디지털과 가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손의 흔적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직접적인 언어가 바로 공예다. 청주는 공예를 품고 빚어 2년마다 꽃으로 피워내고 있다. 그 꽃의 이름은 청주공예비엔날레다. 

도시는 이미지로 기억되고 향유된다. 그렇다면 청주는 어떤 이미지일까? 누군가는 사과를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인 ‘직지(직지심체요절)’를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청주는 ‘공예’로 기억되는 도시다. 처음 청주를 찾은 2015년에도, 마지막으로 청주를 방문한 2023년에도 그 이유는 공예비엔날레였다. 2025년 9월, 청주행이 예정되어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 역시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열리기 때문이다. 

1999년 ‘조화의 손’이라는 주제로 첫 걸음을 시작한 뒤 2년마다 열리는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비주류에 가까운 공예 장르를 국제 현대미술의 플랫폼인 비엔날레에 진입하게 한 선구적 시도였다. 과거의 예술로 인식되던 공예를 현대의 미술로 향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디자인·건축 등과 접목해 새롭게 해석하며 공예를 보존의 대상이 아닌 창작의 장르로 빚어왔다. 13번을 거쳐온 비엔날레는 회차마다 다른 주제와 기획 아래 시대의 감각을 반영함으로써 전통공예부터 현대적 오브제, 디지털 기술과 융합된 공예 실험까지 청주를 한국 공예의 심장으로 뛰게 했다. 공예를 향한 다채로운 담론을 담아 고민하고 현대미술의 대화 테이블로 끌어올리는 실험장이기도 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전통과 기술, 산업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맡아 긴 여정을 이어왔다.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비주류에 가까운 공예 장르를
국제 현대미술의 플랫폼인 비엔날레에 진입하게 한 선구적 시도였다.

청주의 시간과 노동의 흔적이 공예 전시장으로

깊은 의미와 값진 가치만큼 장소도 특별하다. 청주시 내곡동에 위치한 문화제조창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는데, 이곳은 과거 담배를 만들던 연초제조창이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설립되어 반세기 넘게 청주의 경제를 이끈 대표적 산업 시설로, 노동자 3000여 명이 연간 100억 개비가 넘는 담배를 생산했다. 2004년까지 운영하다가 공장이 폐쇄되고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유휴 공간으로 방치되던 건물이 새롭게 태어난 것은 2007년. 청주시가 이곳을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재생하는 결정을 내리고, 기존 건물은 뼈대만 유지한 채 내부를 전시장과 창작 공간, 공연장과 상점 등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연초제조창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과 사용하던 생산 도구들을 전시해놓았는데, 독특한 모자를 쓴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작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를 생산하고 포장하는 일을 맡은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연초제조창에는 탁아소가 별도로 마련되었고, 하루 세 번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주어졌다는 설명에 마음이 뭉클했다. 근대산업의 유산을 철거하지 않고 기억과 건축의 층위로 보전한 점이 인상 깊었다.

공간 재생 후 ‘옛 청주 연초제조창’으로 불리던 이곳은 문화를 생산하는 제조창이라는 의미로 2019년부터 ‘문화제조창’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 전시장 역할은 2011년부터 맡았다. 5만 ㎡가 넘는 본관동은 대규모 면적과 거친 공장의 흔적이 유려한 공예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미학을 선보이고 있으며, 남관동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으로 사용 중이다. 2015년 비엔날레의 특별전 예술감독을 맡아 이곳을 방문한 알랭 드 보통은 “거친 공간이었다. 웅장하고 터프한 공간에서 우아하고 세련된 전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라고 평가했고, 행복을 주제로 펼친 그의 전시는 큰 주목을 받았다. 

문화제조창 본관동은 대규모 면적과 거친 공장의 흔적이 유려한 공예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동시대 이슈와 세계 공예의 흐름을 담은 풍성한 전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공예 중심의 국제 비엔날레다. 그만큼 전시 구성도 풍성한데, 먼저 본 전시를 통해 한국과 세계 공예의 현재와 미래를 해석하고 제시하며 지속 가능성과 환경, 노동 등의 동시대적 과제를 공예의 언어로 풀어낸다. 매회 비엔날레의 철학과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2023년에는 ‘사물의 지도’라는 주제로 인간 중심의 공예론에서 벗어나 인간 외의 존재도 동등하게 대하고, 무분별하게 남획하고 소비하는 자원과 재료에 대해 반성했다. 2025년에 열릴 비엔날레의 주제는 ‘세상 짓기’다.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 등 의식주를 바탕으로 모든 ‘짓기’는 공예와 이어지며 우리 삶과 세상을 짓는다는 점을 사유한다. 본 전시는 대개 4개 섹션으로 구성하는데 작품 수도 워낙 많고, 때로는 품은 의미가 심오하기도 해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한 번 관람으로 내러티브 전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 마음에 와 닿는 한두 섹션만 이해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초대국 전시는 해당 국가의 공예를 통해 역사와 자연, 생활양식을 보여주고 세계 공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2025년 주빈국으로 선정된 태국은 첫 아시아권 초대 국가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한국 공예의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산실

청주공예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는 ‘국제공예공모전’이다. 세계 공예인을 위한 열린 무대로, 장르의 경계가 없고 재료와 매체 제한도 없다. 현대적 실험성부터 전통 기술까지 모두 존중하며 공예의 사회적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을 발굴한다. 언젠가부터 국제공예공모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이는 만드는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공예는 손으로 써온 성실한 미학의 산물이기에 만드는 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작품과 작가 이름을 놓치지 않고 확인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한국 공예의 미래를 이끌 국가대표가 눈에 들어오는데, 2021년 대상을 수상한 정다혜 작가의 ‘말총-빗살무늬’라는 작품이 대표적 사례다. 제주 출신인 작가는 전통 갓을 만드는 재료인 말총의 현대적 활용을 모색하다 선사시대 빗살무늬토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한 올 한 올 매듭 지어 한 층 한 층 쌓은 정성을 실제로 보면 경이로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후 2022년 봄에는 밀라노에서 열린 한국공예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고, 같은 해 로에베재단 공예상 우승자가 되는 감격적인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2025년 4월 도쿄 여행 중에는 하라주쿠에서 열린 로에베의 〈크래프티드 월드〉 전시에 정다혜 작가의 신작인 말총 램프가 세계 각국의 공예 작품과 함께 빛나고 있는 모습도 조우했다. 지금도 런던과 스페인 등 해외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 정다혜 작가는 당시 인터뷰에서 국제공예공모전 대상 수상을 ‘든든한 응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그 응원에 힘입어 나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는 현대 공예의 우수성과 예술적 가치를 기념하고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2016년부터 공예상을 제정해 수여함으로써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 공예 작가들은 2017년부터 30명씩 선정하는 파이널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다. 특히 정다혜 작가가 우승한 2022년에는 총 7명의 한국 작가가 선정되었고, 이 중 5명이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인연이 있었다. 2025년 공모전에는 71개국 작가가 접수해 역대 최다 국가가 참가하고 접수 작품 수도 늘었다고 하니, 미래의 공예 거장을 찾는 탐색이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효성

오랜 시간 기자로 활동하며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한겨레〉에 ‘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 칼럼을 연재하는 등 공예에 관한 칼럼을 쓰며 전시를 기획한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

  • 불멸의 공예가 피어나는 청주
    공예의 도시|박효성
  • EditDanbee Bae WriteHyosung Park IllustrationNuri Kim

Editorial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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