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淸州는 이름 그대로 ‘맑고 깨끗한 고장’이다.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심천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에 가까운 점에서 보듯, 청주는 물이 풍부하기보다는 맑고 청명한 땅으로 보인다. 청주의 음식은 지역의 자연과 비슷한 데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은근히 깊게 보여준다.
인구 90만에 육박하는 청주는 음식의 수와 외식 규모가 인구수에 맞게 발달했다. 미호천이 범람하면서 생긴 미호 평야는 청주시 일부와 청원군, 충남 연기군 등을 연결하는 지역으로, 수량이 풍부하고 경지 정리가 잘되어 있어 곡창지대를 형성한다. 1530년에 쓰인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청주의 땅이 기름지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쌀의 원생지는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5000년 전의 볍씨가 청주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청주의 음식은 지역의 자연과 비슷한 데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은근히 깊게 보여준다.
1913년에 청주군 상신리現 강서2동의 한 집안에서 작성한 조리서 〈반찬등속〉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청주 지역의 음식 문화가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조선의 이전 조리서에 비해 고추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현재 청주의 식당 곳곳에서 고추짠지나 고추짠지 다대기를 찾아볼 수 있어 〈반찬등속〉의 조리법이 지금의 청주 외식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찬등속〉에는 짠지가 여덟 종류나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청주가 내륙 지방이라는 데 있다.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내륙에서는 식재의 보관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장 문화 발달이 필연적이다. 청주는 콩의 품질과 생산량이 높은 지역이었으며, 이런 배경으로 말미암아 콩으로 만든 간장에 절인 짠지를 많이 먹었다. 〈반찬등속〉에서는 고추장을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설탕을 넣는 조리법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청주의 해장국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고추장을 넣는 집이 제법 있다.
청주는 콩의 품질과 생산량이 높은 지역이었으며,
이런 배경으로 말미암아 콩으로 만든 간장에 절인 짠지를 많이 먹었다.
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다. 청주의 올갱이국에 들어가는 올갱이는 정확히는 베틀올갱이다. 1970년대 중·후반, 청주에는 올갱이국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 서문시장 내에 세 군데 있었다. 1977년 8월 9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상주집’이다. 상주집은 서문시장 근처에서 여전히 영업 중인 곳으로, 청주 내에서도 노포 중의 노포로 꼽힌다. 육거리 시장이 청주의 중심이 되면서 한때 13개나 되던 서문시장의 올갱이 전문점은 타격을 받으며 상주집 한 집만 남고 모두 문을 닫았다. 가게 안에는 향토음식업소 지정 현판이나 지정서가 여럿 걸려 있다. 식당의 정식 명칭은 ‘상주올갱이집’이다. 50여 년 전, ‘올갱이 할머니’로 불리던 김월임 씨가 작고한 뒤 딸 김순열 씨가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메뉴는 올갱이국과 올갱이무침 두 개다. 국은 된장을 기본으로 한 구수한 국물에 올갱이와 부추가 오래된 노부부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직접 담근 된장, 열무김치, 깍두기에 짠지고추김치, 짠지고추김치 다대기가 딸려 나온다. 국물이 순하고 깊다. 강하지 않은 청주 음식의 근간을 지켜온 맛이다. 이전에는 충주 지방의 남한강과 괴산의 괴강에서 잡아온 올갱이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충주댐이 생기면서 남한강 상류인 강원도에서 잡아온 것을 쓴다. 올갱이국은 올갱이를 물에 담가 해감한 뒤 끓는 물에 15분쯤 익혀 건져내 국물에 된장을 풀고 계절에 맞는 채소와 부추 양념을 넣고 끓여낸다. “올갱이국 한 그릇이 인삼 한냥쭝과 같다”(1976년 10월 14일 자 〈경향신문〉)는 말처럼 청주인들에게 올갱이국은 건강과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이다.
국물이 순하고 깊다.
강하지 않은 청주 음식의 근간을 지켜온 맛이다.
2012년 서문시장에 문을 연 삼겹살거리는 오늘날 14곳의 삼겹살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이곳 청주에 삼겹살거리가 자리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대외적인 시작은 지차제의 주도였으나, 근간에는 청주 고유의 삼겹살 문화가 있다. 청주의 삼겹살은 네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간장으로 간을 한 게 첫 번째, 연탄에 구워 먹는 게 두 번째, 숙성 김치를 곁들여 같이 굽는 것이 세 번째, 그리고 파절이와 함께 먹는다는 것이 네 번째다. 한겨울, 연탄에 구워 먹는 청주의 삼겹살구이는 겨울철 별미였다. 청주 내 삼겹살집의 효시는 청주약국 옆에 있던 ‘만수집’과 ‘딸네집’이다. 최근에는 연탄에 구워 먹는 문화가 덜한 편이나, 1960년대부터 생겨난 삼겹살집은 모두 연탄구이였다. 그 후 삼겹살 구이는 청주 전역으로 퍼졌는데, 과거 속리산 고속터미널 옆에 있던 ‘고속주점’이 가장 유명했다. 고기 맛이 유별나게 좋았다.
청주의 간장삼겹살을 ‘시오야키塩焼き’라 부르기도 한다. 시오야키는 소금으로만 간을 한 일본의 생선구이를 말하는데, 간장으로 살짝 간을 하거나 소금만 뿌려 구운 형태에서 나온 이름인 듯하다. 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은 암퇘지와 수퇘지를 구분하지 않고 먹던 시절, 돼지고기의 잡냄새를 없애기 위한 방법이었다. 간장에 넣는 재료도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생강, 마늘, 계핏가루나 여러 한약재를 넣어 만든다. 고기는 간장에 재워두는 게 아니라 나갈 때 뿌려 낸다. 돼지 도축장 근처에 위치한 신봉동의 ‘청주식당’에서 파는 간장불고기는 질 좋은 재료에 양념을 최소화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파절이와 잘 익은 김치가 삼겹살을 달보드레하게 만든다.
청주의 삼겹살은 고기 맛도 좋지만 상추, 깻잎, 마늘, 양파, 파절이 등 푸성귀와 양념류가 푸짐하게 곁들여 나온다. 2010년 11월 2일 자 〈충북일보〉에는 “청주는 어느 삼겹살집이든 채소류를 더 달라는 요구에 웃돈을 받거나 귀찮아 하는 집이 하나도 없다. 삼겹살과 더불어 넉넉한 인심이 우수리로 붙어 나오는 것이다”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이 기사 이후 2012년에 본격적인 삼겹살거리가 조성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연탄에 구워 먹는 문화가 덜한 편이나,
1960년대부터 생겨난 삼겹살집은 모두 연탄구이였다.
청주의 쇠전우시장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했다. 경북의 의성 쇠전, 경기도 수원 쇠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쇠전으로 꼽혔다. 청주 쇠전은 남주동 일대에 있었고, 그 주변에 남주동 해장국집이 생겨났다. 1943년에 들어서 여전히 성업 중인 ‘남주동해장국’은 청주식 해장국의 살아 있는 화석이자 맛의 정점에 있다. 선지해장국과 소고기해장국이 대표 메뉴다. 선지해장국엔 선지와 소고기, 양이 골고루 들어간다. 사골과 소 등뼈를 푹 고아 만든 국물의 바탕은 같다. 소고기 육수에 10년 숙성 고추장을 넣은 것이 이 집 맛의 핵심이다. 달달하고 감칠맛이 감돌면서 살짝 매운 고추장 맛이 고기 국물의 느끼함은 잡아주고 감칠맛은 극대화해 지속시킨다. 선지의 질도 탁월하다. 냄새가 없고 보드랍다. 단면을 자르면 녹색빛이 감돌고, 치즈처럼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최상급이다. 고기도 부드럽게 선지와 어울리는 식감을 낸다. 역사만 남은 집이 아니라 역사를 맛으로 승화시킨 곳이다.
청주에는 이외에도 ‘육거리소문난만두’, 58년 전통의 ‘금강설렁탕’, 도토리 묵밥집 ‘선비묵밥’ 같은 명가가 즐비하다. 1960년대에는 가락국수가 큰 인기를 얻었고,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는 청주의 꽁보리밥집이 외식 문화로 처음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간이 세지 않지만 광고 문구처럼 “소리 없이 강한” 청주의 음식 문화는 자극적인 음식이 주목받는 이 시대에 더욱 관심을 끌 만 하다.
청주의 쇠전우시장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했다.
경북의 의성 쇠전, 경기도 수원 쇠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쇠전으로 꼽혔다.
Illustration | 박정배 작가가 상주올갱이집, 남주동해장국에서 보내온 밥상 사진과 연탄 삼겹살 한 상 차림를 함께 배치한 식탁 풍경.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정배
한·중·일 음식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고 현장을 탐사한다. 글 전체에 거세게 몰아치는 사료는 읽는 이를 식문화사의 생생한 한가운데로 옮겨놓는다. 〈조선일보〉에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결정적 메뉴’ 등을 연재했으며, 넷플릭스 〈한우랩소디〉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자문으로 참여하거나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국물아카데미’, ‘국수학교’ 등 음식 관련 강의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저서로 〈만두, 한중일 만두와 교자의 문화사〉와 〈음식강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