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사진과 관련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자’라는 마음이었어요. 다른 지역도 비슷할 텐데, 특히 청주는 사진작가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요. 기업의 본사나 마케팅을 할 정도의 중소기업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사진작가가 할 수 있는 미디어 관련 일이 드물죠. 그래서 우선 청주에서 사진작가가 뭘 하는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청주의 사진 생태계를 공부했어요. 청주에서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들을 거의 다 만나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죠.
교육에 연관된 일이 많더라고요. 청주가 교육의 도시로 불리잖아요. 4년제 대학도 10개나 있고, 전국적으로 평생교육원도 많은 편이라 교육에 관련된 사진 일이 많았어요. 저도 사진 교육 관련 일을 접하게 됐고요. 그러다 2011년도부터 지역에 문화재단이 생겼어요. 충북문화재단과 청주문화재단이 생긴 다음부터는 지역의 문화와 연관된 일을 하게 됐어요.
청주에서 스튜디오 형태가 아닌 사진 작업을 하고 있고, 도서관을 운영을 비롯해 사진 수업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생기고, 문화 기획자 역할도 하게 됐죠. 지역에 기록원이 생기고 아카이브 분위기가 마련되면서 관련 프로젝트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최근에 가장 몰두한 일은 충북 사진작가들의 연구였어요. 그 다음으로는 지역에서 급격하게 사라지는 것, 당장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된 일은 동부창고를 기록하는 일이었어요. 5년 넘게 찍어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예전 동부창고에 연초제조창이 있었거든요. 바로 옆에 KT&G 담배 공장이 있었고요. 공간이 오랜 시간 방치돼 있다가 지금의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죠. 그런데 그 변화의 흐름이 정말 빨랐어요. 그리고 저는 예전 동부창고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촬영하기 시작했죠. 이 일을 계기로 이제 촬영하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청주는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인데, 이렇게 대규모로 변화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것들이 있다 보니 촬영할 만한 소재라고 인지하지 못했죠. 그런데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변화를 누군가는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는 지역의 변화한 모습은 누가 사진으로 기록하지?’ 그런 질문이 생겨서 촬영을 하게 된 거죠.
청주에도 1960년대 후반에 지역 작가 협회가 생기고 이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는 거예요. 그분들이 발표를 하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가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최근 한 10년 사이에 청주에 국공립 미술관이 많이 생기면서 이제 사진작가들이 전시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청주 시립미술관에서 지역 사진작가 전시를 해야 하는데, 미술관에서 사진작가에 대해 자문을 구하더라고요. 마땅히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없어 누가 전시에 적합한지 파악하기 어려워 자료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죠.
2022년에 처음 미술관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가 후속 연구를 해왔고, 가을에 첫 번째 책이 출간돼요. 제목은 〈충북 사진작가로 산다는 것〉이고요. 총 601명의 충북 사진작가를 조사해 담은 인명 인터뷰 책입니다. 오랜 기간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부러 서둘러 진행했어요. 타지에는 이미 지역 사진작가들이 어느 정도 공론화해 있고 연구도 많거든요. 그에 비해 충북은 오래전부터 사진 활동이 어어져온 것에 비해 문헌이 상대적으로 적어 빠르게 작업하고자 노력했어요.
현재 진행 중인 ‘동네기록관’요. 청주에 문화도시 사업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기록의 의미와 행위가 더욱 중요해졌고, 저는 ‘동네기록관’이라는 꼭지를 맡았어요. 지역에 당장 사라지는 현안들이 있잖아요. 건물이 말소될 때 토지대장에 건물 사진을 첨부하긴 하는데, 대부분 요식행위로 끝나요. 건물이 어떤 사진 기록도 없이 부서지면 영영 사라지는 거라, 지역의 오래된 건물 사진들을 지역 주민들과 모아두려고 했어요. 주민들과 함께 사진의 양으로 채운 프로젝트였죠.(웃음) 2020년부터 1년에 평균 3~4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출판물로 묶었어요.
서울로 말하면 남대문이나 경복궁 같은 문화재가 청주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재 기록조차 청주에는 부재하는 거예요. 인터넷 서점에서 청주를 검색하면 책도 거의 없죠. 지역의 기록물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걸 확인하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동네기록관’ 프로젝트로 출간된 책이 20권이 넘어요. 다행인 게 청주에서는 책을 출판하는 문법에 익숙해요. 청주시 차원에서 ‘1인 1책 펴내기’ 운동도 했거든요.
지금 운영하는 도서관에는 지역 책보다 해외 서적이 많아요. 출판 기획자로 일하면서 구매한 책, 제가 작업하며 참고하기 위해 산 책이 많죠. 지역을 기록하는 출판물이 생성되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청주에서 만들어진 책들을 모아서 만든 사진집 도서관을 건립하는 게 꿈이에요. 그래서 데이터도 열심히 관리하고 있어요. 이런 포부를 가지고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출판물을 만든다면 언젠가는 청주에 사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앞으로 지역을 기록하는 움직임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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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사진작가의 사진집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