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과 병과, 스트리트 디저트 빵 요정의 여행|김혜준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당일치기 지방 여행의 묘미는 단연 ‘먹거리’가 아닐까. 특산물로 정갈하게 차린 백반 한상이나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감칠맛 가득한 전골도 좋다.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내륙에서 만나는 산채나 뚝배기 한 그릇에 담긴 고기국밥은 그야말로 도심을 벗어난 탈출의 기념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주로 향하는 나의 머릿속은 온통 달콤하고 포근한 청주의 디저트로 채워졌다. 대전이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빵의 도시라면, 차분한 교육의 도시 청주는 그야말로 초콜릿과 병과, 스트리트 디저트가 사이좋게 어우러진 매력 넘치는 디저트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면 기차보다 고속버스를 선호하는 나는 버스 안에서 틈틈이 지도 앱에 저장해둔 디저트, 빵집들을 찾아 휴무일과 동선을 고려해 루트를 완성한다. 플랜B는 필수로 준비해두는 슈퍼 J이지만, 여행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첫 번째 목적지는 용암동 농협물류센터 내 하나로마트 푸드코트에 위치한 미미호떡이다. 호떡 하나 먹으려고 생각보다 먼 길을 나선 우리는 역시나 먹는 일에 진심인 고귀한 영혼이다. 과연 이 길로 가는 것이 맞을까 싶은 낯선 길을, 지도 앱이 알려주는 대로 지름길을 따라 걸었다. 마트 안으로 들어가 푸드코트 키오스크를 찾았다. 10개 정도 넉넉히 사서 몇 번이고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갓 튀겨낸 호떡 하나를 손에 쥐었다. 뭐든 눌러 구워내는 크로플 열풍의 영향인지 바삭하게 눌러 튀긴미미호떡은 고소하고 바삭한, 상상한 맛의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었다. 뒤돌아서 하나 더 사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매력적인 미미호떡, 합격!

방향을 틀어 한국 전통 병과점을 찾았다. 이름하여 1913 청주부엌. 반가 음식과 전래 음식으로 한국의 맛을 전해온 강인희 선생을 계승한 한국전래음식연구회의 이말순 선생에게서 요리를 배운 강신혜 대표가 이끌고 있다. 이곳은 그가 직접 만든 떡과 한과를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단아한 공간이다.

특히 충청북도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유형문화재 ‘반찬등속’을 통해 1910년대 한과를 재현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청주를 방문하면 꼭 찾고 싶은 곳이었다. 올해 단오는 5월 31일이었는데, 운 좋게도 단오를 위해 만든 메뉴인 오미자하귤 화채와 전통 궁중떡인 두텁떡을 맛볼 수 있었다. 만듦새부터 공간이 주는 우아한 멋이 깃든 맛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감동을 안겼다.앞으로 내게 청주의 꽃말은 1913 청주부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청주 번화가에 속하는 성안길에서 늘 오픈 런이 필수인 타르트 전문점 흥흥제과는 성비와 맛에서 디저트 마니아를 만족시키는 곳이다.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파티시에와 키친팀이 만들어 내는 과일 타르트 전문점으로, 제철 과일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화려한 비주얼과 견고하게 설계한 크림과 아몬드 필링의 조화가 돋보이는 타르트와 치즈 케이크가 쇼케이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1층에서 포장하거나, 주문 후 2층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제철 과일을 올리는 타르트의 구성은 사실 꽤 단조롭다. 아몬드 파우더와 버터, 설탕, 달걀 등을 사용해 만든 타르트지를 틀에 넣고 구워 낸 다음, 충분히 식힌 후 준비한 크림과 포인트가 되는 과일을 올리면 된다. 하지만 전문가의 감각은 한 끗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법. 과일이 지닌 수분과 산미, 당도, 그리고 풍미에 어울리는 크림의 종류를 조화롭게 매칭하는 것이다. 과일 고유의 싱그러움을 살리면서 디저트의 당도를 비롯해 보존성, 비주얼과 컬러까지 돋보이게 신경 써야 한다. 예를 들면 피스타치오 크림과 자몽의 조합도 좋고, 딸기와 마스카포네 치즈를 더한 티라미수 레이어가 깔린 타르트를 들 수 있다. 조각별로 골라 먹는 재미, 서울로 돌아가기 전 포장해서 들고 갈 수 있는 예쁜 패키징, 무엇 하나 아쉬움이 없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청주 디저트 신의 원조 아이돌이라 불릴 만한 초콜릿 전문점 본정을 소개한다. 1999년 처음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청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향토 브랜드로, 많은 이의 어린 시절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초콜릿 디저트 ‘봉봉’ 외에 진한 초콜릿의 매력이 가장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디저트는 단연 케이크류라고 생각한다.

살구잼과 초콜릿이 아름답게 결합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디저트 자허토르테Sachertorte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에 위치한 숲의 이름에서 비롯된, 술에 절인 체리가 들어간 초콜릿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를 본정에서도 만날 수 있다. 홀 케이크를 여럿이 나눠 먹는 재미도 있지만, 조각 케이크로도 판매하니 꼭 맛보길 추천한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오후의 피로가 몰려올 무렵에는 진하고 달콤한 아이스 초콜릿 음료가 확실한 부스터가 되어줄 것이다. 달콤하고 풍요로운 청주의 식도락 여행, 그 뉘앙스를 끝까지 놓치지 말 것!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레스토랑 브랜딩 디렉터·푸드 칼럼니스트 김혜준은 외식업 전문가로 ‘김혜준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레스토랑 매니저로 일하게 되어 외식업에 입문했으며,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제과를 공부한 뒤 제과 브랜드에서 3년간 근무하며 자연스럽게 브랜딩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이후 업장을 오픈하는 등 자신 앞에 놓인 ‘음식’이라는 운명을 따르며 오랜 시간 일과 일상에서 맛을 즐기고, 음식에 관한 글을 쓰며 고양이 삼 형제를 돌보고 있다.

  • 초콜릿과 병과, 스트리트 디저트
    빵 요정의 여행|김혜준
  • EditDanbee Bae WriteHyejun Kim PhotographHyejun Kim IllustrationSo won(Neap)

Editorial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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