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마주한 얼굴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한승재

침대에 누워 낮에 본 다양한 석동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얼굴들은 저마다 재밌는 표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없었으니, 오직 내 상상 속에서 듣는 소리다. 딱딱한 돌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기에, 그들은 실제보다 더 유쾌한 표정을 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표정만으로 표현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눈을 감아도 ‘으하하하’ 웃는 석동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청주라는 낯선 도시에서 나와 관련 있을 법한 장소를 찾아보다 국립청주박물관을 발견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로, 김수근은 감히 한국을 대표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건축가다. 식민지와 전쟁 이후 정체성을 잃어버린 한국 건축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재능 있는 건축가로,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잘 만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둘 다 맞는 이야기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처럼 빼어난 상징성을 자랑하는 건축물을 설계하기도, 공간 사옥처럼 아담한 품의 건축을 설계하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의 인권을 탄압하던 건물도 마다하지 않고 설계했기에 그를 부정적 시선으로 보는 여론도 있지만, 그의 재능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군가는 단 한 번도 얻기 어려운 기회를 여러 차례 부여받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시절은 건축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했다. 사회가 발전해갈수록 건축은 점차 합리성과 경제성이 중요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건축은 언뜻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수근이 살던 시절의 건축은 지금보다 더 화려하고 더 집요했다. 당시는 건축이 지금보다 더 큰 상징을 가졌던 시절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중요한 만큼 공들여 설계하고 공들여 지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건축은 오히려 요즘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더욱 가치롭게 느껴질 수 있다.

다른 도시를 방문했을 때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을 방문한 적 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는 건축의 권위가 흐물흐물해졌다는 감상을 받았다. 겉모습은 무척 화려하고 기백이 넘치는 건물이었는데, 아쉽게도 잘 관리되지 않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커다란 공간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채워놓은 흔적이 역력했다. 오래된 건물은 꽉 막힌 고집 같은 게 있어서 현대의 운영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유연하게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래된 좋은 건물이 잘 사용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국립청주박물관을 향하며 애써 기대감을 억눌렀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곳이었는데, 건물 자체의 크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물관에 들어가기까지의 풍경과, 박물관을 둘러싼 자연, 그리고 돌담길이 박물관을 큰 곳처럼 느끼게끔 만들었다. 건물들은 모두 산등성이에 얹어져 있어 한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물결처럼 넘실대는 기와지붕이 여러 겹 포개어져 있었다. 그것이 입구에서 바라본 국립청주박물관의 모습이었다. 건조하고도 더운 초여름에 바닥을 지르밟듯 한 걸음 한 걸음 걷기 시작했고, 정성스럽게 쌓은 돌담이 마중 나와 그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딘가 조금 어리숙한 동생 같은 얼굴들이,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이는 얼굴들이, 아무리 뜨거운 햇빛에 달궈져도 절대 타지 않는 강력한 얼굴들이 건물 안과 밖을 가득 채우고 소리 없이 와글거렸다. 석동이라고 불리는 돌조각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석동들 표정이 참 재미있죠?” 와글거리는 석동들의 아우성 사이로 진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장소에서 타인과 유지하고 있던 일정한 거리가 무너졌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한 여성 직원이 가까이 다가와 어디서 온 손님인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박물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곳은 1985년, 40여 년 전에 완공한 곳이었다. 박물관 건립의 염원을 담아 지역민이 개인 부지를 기증했고, 그 산비탈 땅 위에 김수근이 설계를 더했다. 안타깝게도 땅을 기증한 사람도, 김수근도 이 건물이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여러 채의 건물은 바깥을 거치지 않고 건물 내부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산책로처럼 건물 내부를 따라 걷다 보면 지그재그로 산을 오르게끔 계획되어 있었다. 건물과 건물이 만나는 곳, 동선이 중첩되는 곳에서는 창밖으로 뜨겁고 짙푸른 여름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 땅을 두루 사용하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느껴졌다. 무척 오래전에 지어졌지만 현재까지도 무척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새롭게 개보수했는데, 그 방향이 오래된 건물과 무척 잘 어울리는 듯했다. 외부 사람은 물론 주민들도 자주 찾아온다고, 그런데 주민들은 박물관 안쪽보다는 바깥 공간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불평하는 듯 자랑하기도 했다.

“저는 샤갈의 그림도, 피카소의 그림도 참 좋아해요. 그런데 여기 있는 석동들을 보잖아요? 표정이 하나하나 살아 있어요. 샤갈이나 피카소 그림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원은 마치 소녀 같은 말투로 귀중한 것을 소개하듯 석동을 가리켰다. 이것저것 주워다 놓은 할머니의 화단처럼 박물관 전체를 뒤덮은 것은 누군가가 기증한 돌조각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것들은 샤갈이나 피카소의 그림에 견줄 만했다.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 진지한 표정을 하고···. 그 광경이 어찌나 소란스러웠는지 석동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수장고에 들러 그곳에 저장되어 있는 미술 작품을 둘러보았다. 국립청주박물관 건물의 오래된 권위와 비교되는 담백한 창고 건물이었다. 전시되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잠시 꺼둔 수장고의 작업물들. 그러나 그것들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없지만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 석동들의 아우성처럼, 작품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넓은 공간을 할애해 전시되어 있지 않아도, 계속 살아 있었다. 미술작품이 하는 일이란 석동과 마찬가지로 소란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발산하는 일이다. 석동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고 말한 안내자분의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표정이 살아 있다는 말은, 어찌 됐든 살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미술관에서 나와 잠시 눈 붙일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차를 운전해 서울로 되돌아가는 길이 너무 피곤할 것 같았다. 지도에 표시된 찜질방을 찾아갔는데, 이토 준지가 그리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썰렁한 곳이었다. 손님을 반길 줄 모르는 주인과 인적이 드문 내부, 한구석에 모아놓은 잡동사니 물건들. 그다지 쾌적한 느낌은 아니었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매트리스와 베개를 찾아 눈을 붙이려는데, 주인이 어느 작은 문을 가리키며 저곳에 들어갔다 오라고 했다. 이건 또 뭐람. 개집처럼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둡고 큰 공간이 나왔다. 무겁고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짓눌렀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몸을 통해 빠져나왔다. 이내 오늘 본 건축물 중 가장 독특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친 거 아닌가? 그곳은 주인이 하나하나 쌓았을 법한 거대한 돌무더기 속이었다.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거대한 아궁이 속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커다란 돌무더기 속에서 동전처럼 무거운 땀을 뚝뚝 흘렸다. ‘으하하하’ 소리 없이 웃던 석동들과 수장고에 저장되어 있던 작품들, 그리고 한여름 더위보다 무섭게 인간을 굽는 무더운 돌가마. 조용하고 무덥던 여름날의 청주는 그렇게 소란스러운 곳으로 기억되었다.

한승재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의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해 현재는 9명의 동료와 함께 건축하고 있다. 성수연방, 집 안에 골목, 서교동 콘크리트 상가 등을 설계했다. 건축을 하며 동시에 꾸준히 글도 쓰고 있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엄청멍충한〉 등의 저서가 있다. 건축 에세이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를 동료들과 함께 썼다.

  • 청주에서 마주한 얼굴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한승재
  • EditAreum Lee WriteSeung Jae Han PhotographSeung Jae Han IllustrationSo won(Neap)

Editorial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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